ENVI for Astronomy

이 글은,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저는 학교에 다닐 때는 천문학을 공부했습니다. 밤하늘을 촬영한 영상을 분석하는 일을 주로 했는데, 그 일을 안한지는 이제 15년 쯤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상을 촬영한 영상을 분석하는 원격탐사 일을 하면서, 제가 학교에서 배우던 것들과의 묘한 연결고리 같은 것을 보게 됩니다. 배운 게 천문학이니 연결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도 하네요. 그래도 제 생각은 천문학과 위성원격탐사는 그 이상의 연관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죠. 어쨌든, 제가 평소에 하는 얘기지만, 천문학은 애초부터 원격탐사였습니다. 아마도 아주 먼 미래까지도, 거의 확신하건대 영원히 원격탐사가 유일한 방법으로 남을 겁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가장 최신의 필름도 천문학에서 쓰려고 개발하였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디지털 영상 센서도 천문학에서 처음 사용하고, 세상에서 제일 큰 렌즈들도 천문학에서 사용합니다.

천문학 분야에서, 우리의 ENVI와 같은 도구를 논하자면 아마도 IRAF(Image Reduction and Analysis Facility) 라는 패키지가 대응될 것입니다(요즘은 다른 도구가 더 많이 쓰일지도 모릅니다. 이젠 사실 잘 몰라요, 이 분야…). 천문학의 특성인지, IRAF는 유닉스 또는 2000년대에는 리눅스에서 사용할 수 있게 배포가 되었으며, 당시에 이거 설치만 해도, 큰 일 한 것처럼 매우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냥 선배들이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 하면 그대로 따라서 (OS 부터 같은 버전으로 설치해서) 설치하고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설치가 불편해도 감지덕지 사용한 것이, 이게 무료로 배포되고 있을 뿐 아니라, 대안도 없었습니다. 별 사진, 은하 사진을 분석하는 사람들에게 IRAF는 필수 도구였습니다. 많은 천문학 전공자들이 Linux OS에 익숙한 이유가 아마도 IRAF 같은, 천문학계의 굉장한 도구들이 Linux용으로 배포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에 회사에 입사했을 때, 위성 영상을 분석해야 하는데, 상황이 좀 급했습니다. ENVI를 배워서 차분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냥 익숙한 도구를 이용해서 영상을 분석했어요. 저의 첫 위성영상 분석 업무는 그래서 IRAF를 이용해서 수행되었습니다. 급하니까 익숙한 도구를 쓴 건데, 이후, ENVI 세일즈를 담당하게 되면서 좋으나 싫으나 ENVI를 배우고, 결국 위성영상 분석에서는 ENVI가 훨씬 편하고 강력한 것을 알게 되니, IRAF는 잊혀졌습니다.

오늘은 반대로, 오랜만에 천체 영상을 처리하고 분석할 일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요즘은 IRAF 설치가 훨씬 쉬워지지 않았을까(Linux도 이제 패키지 설치가 쉬워졌으니까요) 생각은 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IRAF를 사용하는 방법이 기억나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현재로서의 결론은 ENVI죠. 다행히 제가 천문학에 대해 전문가 포지셔닝을 해야할 상황도 아니고, 손에 익숙한 걸로 처리하면 됩니다.

ENVI를 이용한 M31 영상의 전처리

ENVI에 고급 천문학 도구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하는 영상처리 과정은 모두 수행이 가능하니, 손에 익어 쓰기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ENVI에 Astronomy Toolbox가 본격적으로 개발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누군가 취미로 개발하지 않는한, 이미 40년 가까이 된 IRAF보다 나은 도구를 만들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옛 생각에 젖어, 예전에 어떻게 위성영상을 IRAF에 올렸는지 생각해 보다가, IRAF 설치는 이제는 못하겠고, 설치가 쉽고 구하기 쉬운 천문학자용 영상 뷰어 DS9을 설치해 보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작업할 때는 IMTOOL 이라는 다른 도구였던 것 같은데, DS9과 비슷합니다. DS9은 천문학자를 위한(꽤 심오한) 도구이지만, 저는 그냥 지상의 위성영상을 한번 올려 보았습니다. 예전에 이 비슷한 도구와 IRAF 패키지로, 지형 분석을 하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도 나고 그러는군요. 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천문학 영상 분석 도구 SAOImage DS9에서 Landsat 영상 검토

SAOImage DS9은 천문학 도구이지만, Import 메뉴에 ENVI 포맷도 있습니다. 오호~, 지금 보니 그러네요. 기원은 잘 모르겠습니다. 왜 ENVI 포맷이 여기에도 읽혀지도록 만들어졌는지… 아마도 그 덕분에 입사 초기에 일을 쉽게 하지 않았을까, 기억나지는 않지만 추측도 해 봅니다. 물론, ENVI 포맷이 워낙 직관적인 포맷이어서(개발자들에게는 아주 아주 쉬운 포맷입니다) 어렵게 기능을 구현했을 리는 없습니다.

DS9의 매뉴얼. 천문학자들만 쓰는 도구인데 ENVI 포맷이 당당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ENVI 사용자들에게 별로 의미가 될만한 내용이 없는 글이었습니다. 그냥 제가 우연히 ENVI로 천체영상을 처리해 본 것일 뿐이죠. 그렇지만 ENVI의 기반 언어인 IDL을 생각해 본다면, IDL for Astronomy는 NASA가 관리하고 무상배포하는, 매우 중요한 패키지입니다. readcol 과 같은 강력한 유틸리티도 IDL Astronomy 라이브러리에서 제공될 정도입니다. 이 기반이 있으니, ENVI Astronomy Toolbox를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가, 바로 접었습니다. 말씀 드렸듯이, 제가 기억하는 IRAF만 해도(지금은 더 강력해졌겠죠), ENVI가 천문학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은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전혀 다른, 그렇지만 강력한, 영상 분석 방법을 새로 제공하지 않는 한, 의미가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천체영상 분석을 하는 상황이라면(고차원적인 분석이 아니라면), ENVI가 제일 편하네요, 이제는…